뮤지컬 ‘콰이어 오브 맨’에서 배우들이 맥주잔을 든 채 두 팔을 펼치고 첫 곡 ‘웰컴 투 더 정글’을 부르고 있다. 신시컴퍼니
“누군가는 아픔을 이겨내고 내일을 살기 위해 마시고 춤추고 노래할 수 있어요.”
펍(pub)은 ‘퍼블릭 하우스(public house)’의 줄임말이다. 미국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는 집과 일터 사이에서 사람들이 격의 없이 어울리는 곳을 ‘제3의 장소’라 불렀는데 펍이 대표적이다. 우리로 치면 퇴근길 동네 호프집쯤 된다. 맥주 한잔에 오늘의 고단함을 털어내고 내일을 맞을 힘을 얻는 곳이다.
지난달 18일 개막한 ‘콰이어 오브 맨’은 극장을 통째로 이 펍으로 바꿔 놓는다. 런던의 동네 펍 ‘더 정글’에 모인 남자 9명이 퀸과 아델, 건즈 앤 로지스, 시아 등의 히트곡 16곡을 부르는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2017년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에서 초연해 웨스트엔드까지 진출했고 2022년 올리비에상 후보에도 올랐다. 신시컴퍼니가 비영어권 최초로 한국어 공연을 올렸다.
관객은 공연 시작 20분 전부터 펍의 손님이 된다. 본공연에 앞선 ‘프리쇼’ 동안 무대 위 바에 오르면 배우가 직접 논알코올 맥주를 따라준다. 원하는 거품 비율까지 맞춰준다. 관객 참여는 본공연에서도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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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은 관객을 무대로 불러 칵테일을 만들어주고 세레나데를 바친다. 그때마다 수줍어하거나 적극적으로 나서는 관객들의 반응이 뜻밖의 웃음을 자아낸다.
뮤지컬 ‘콰이어 오브 맨’에서 배우들이 ‘웰컴 투 더 정글’에 맞춰 의자와 대걸레, 탬버린을 들고 펍 안을 휘젓고 있다. 신시컴퍼니
볼거리도 다양하다. 배우들은 피아노와 기타, 트럼펫을 직접 연주하고 탭댄스를 추며 맥주잔과 대걸레로도 박자를 만든다. 무대에 쓰이는 악기만 14개다. 배우들은 100분 동안 한 번도 퇴장하지 않는다. 오민영 음악감독은 주인공 없이 9명 모두가 합창 파트를 외우고 악기까지 다뤄야 하는 작업이 음악 전공자에게도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고 했다.
공연에 뚜렷한 줄거리는 없다. 남자들은 함께 축구 중계를 보며 환호하고 두고 온 가족을 그리워한다. 누군가는 떠나간 연인 때문에 아파한다. 각자의 사연을 나누며 술잔을 부딪히고 저마다 다른 음색으로 솔로곡을 부르다가도 이내 아홉 명이 한목소리로 화음을 맞춘다. 섬세하면서도 힘 있는 화음만으로도 들을 만한 공연이다. 임준혁은 “혼자가 아닌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라고 했다.
비영어권 첫 공연인 만큼 현지화에도 공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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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인물의 이름을 실제 배우의 이름으로 바꿨고, 후반부 ‘집’에 관한 스피치는 배우들이 직접 쓴 이야기를 바탕으로 새로 썼다. 이별에 아파하는 인물은 이소라의 ‘제발’을 아카펠라로 부른다. 배우들이 자기 이름을 걸고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다른 어떤 공연보다 배우들과 가까워진 느낌이 든다.
뮤지컬 ‘콰이어 오브 맨’에서 배우들이 피아노 주위에 모여 ‘아임 고나 비(500 마일스)’를 부르고 있다. 신시컴퍼니
겉으로는 펍 이야기지만 극장에 대한 헌사이기도 하다. 극장도 낯선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여 같은 시간을 나누는 곳이다. 배우들은 지금 이 자리에 함께 있는 시간이 그 자체로 소중하다고 말한다. 극장을 찾아와 준 관객에게 건네는 감사 인사로도 들린다. 이지영 협력 연출은 극 중 “이야기하러 나온 것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것을 함께 느끼려고 나왔다”는 대사를 짚으며 공연이 이 감각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한국 대극장 뮤지컬에는 ‘엘리자벳’이나 ‘드라큘라’처럼 환상적인 설정과 금단의 사랑을 앞세운 작품이 많다. ‘콰이어 오브 맨’은 그 반대편에 선 공연이다. 2017년 초연한 작품인데도 한국 무대에서 오히려 새롭게 느껴지는 이유다. 평범한 남자들의 일상과 노래만으로 소소한 위로를 전하는데도 100분이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퇴근길 동네 펍에 들르듯 가벼운 마음으로 찾기 좋은 공연이다. 공연은 내년 1월 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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