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산청 둔철산 자락의 암자 정취암. 암자의 이름을 달고 있지만 웬만한 절 못잖은 규모다. 암자가 세워진 자리는 상서로운 기운이 금강산 못잖다고 해서 한때 소금강이라 불리기도 했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흘러내린 산줄기가 동쪽으로 낮게 엎드리는 자리에 산청이 있다. 남덕유산에서 내려온 물과 지리산에서 흘러온 물이 만나 경호강이 되고, 강은 100리를 굽이돌며 고을 한가운데를 지난다. 가을이면 그 물길을 따라 들판이 누렇게 익고, 산자락마다 억새가 하얗게 일어선다.
산청(山淸). 이름부터 ‘산이 맑은’ 고을이다. 산청을 이야기할 땐 흔히 천왕봉과 대원사계곡, 동의보감촌 같은 이름난 명소부터 꼽는다. 하지만 이 가을 산청에서 오래 눈에 밟힌 건 화려하게 꾸민 것들이 아니었다. 전기 패널 대신 아궁이를 남긴 한옥이 그랬고, 다랑논에서 돌을 골라내 연못을 일군 절집이 그랬다. 하나같이 사람의 손이 오래 머문 곳들이다. 꾸미는 일과 공들이는 일은 다르다. 꾸밈은 눈길을 끌지만, 공들임은 마음을 붙든다. 산청에서 그 차이를 새삼 알게 됐다.
# 뜯길 위기의 한옥을 내다
강인석(60) 씨가 한옥을 보러 간 날, 마당에는 먼저 온 사람이 있었다. 진주 인사동에서 왔다는 골동품상이었다. 진주에도 인사동이 있다. 서울 인사동처럼 골동품상과 고미술상이 모여 있는 거리다. 골동품상이 겨누고 있던 건 경남 산청군 신등면 단계마을의 한옥이었다. 한옥은 ‘투트랙’으로 나온 매물이었다. 집주인 어머니는 집을 통째로 팔려 했고, 아들은 집을 뜯어 팔 궁리를 하고 있었다. 기둥과 대들보, 문짝과 마루널이 골동품이 될 만큼 고풍스러웠다. 강 씨는 그날 부랴부랴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계약을 안 하면 이 집이 뜯기겠구나 싶었지요.”
이 한옥이 뜯겨 나갈 뻔한 건 처음이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 말로는 원래 충남 부여에 있던 집을 뜯어다 이곳에 다시 세웠다. 부여에서 처음 지어진 게 1890년대쯤으로 추정된다. 단계로 옮겨 온 집은 순천박씨 재력가 집안이 여름 별장처럼 쓰다 오래 비워 둔 터였다. 한 번 뜯겨 옮겨 온 집이, 백 년을 넘겨 또 한 번 뜯겨 나갈 뻔했던 것이다.
강 씨는 책방을 하려고 오래 한옥을 찾아다녔다. 전국을 돌며 숱한 집을 봤지만 마음에 드는 집은 드물었다. 그러다 만난 게 이 집이었다. 2022년 5월, 집은 카페 ‘소북(素北)’과 책방 ‘밀당’이 됐다. 마을 사람들은 다 말렸다. 이 시골에 무슨 카페 손님이 오겠느냐고, “그냥 딸기 농사나 지으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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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말이 아니었다. 단계는 딸기로 이름난 마을이다. 그 마을 한복판에서 딸기 대신 커피를 내리겠다고 했으니 걱정이 앞설 만했다.
소북의 ‘소(素)’는 꾸밈없음이다. 다들 바닥에 전기 패널을 깔라고 할 때 강 씨는 아궁이를 남겼다. “한옥은 한옥답게 남아야지요.” 툇마루 밑엔 장작이 가지런히 쌓여 있다. 웬만한 건 제 손으로 고치려고 한옥 소목 일까지 배웠다. 한옥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엄두도 못 냈을 일이라고 했다. 꾸밈은 덜어냈지만, 손은 그만큼 더 갔다.
대문을 들어서면 잔디 마당에 디딤돌이 두 줄로 놓였고, 빨강·노랑·초록 나무 의자가 나란히 손님을 기다린다. 대청에 오르면 휘어진 통나무 대들보가 다듬지 않은 생김새 그대로 머리 위를 가로지른다. 서까래도 굵기가 제각각이다. 반듯하게 켠 목재로는 낼 수 없는 표정이다. 마당 한쪽엔 헌 기와가 켜켜이 쌓였다. 본채 옆으로 돌아가면 소나무 한 그루를 끼고 앉은 하얀 별채가 나온다. 접이식 유리문을 활짝 열어젖힌 별채 안에도 책장이 빼곡하고, 소나무 그늘엔 빨간 파라솔이 펼쳐져 있다. 한옥과 단정한 시멘트 건물이 정원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는데, 둘이 서로 다투지 않는다.
커피 한 잔을 받아 툇마루에 걸터앉으면, 수국 곁 바위 위에서 몸을 말고 조는 고양이와 눈이 마주친다. 오후 한나절이 거기서 다 간다.
산청 단계마을의 한옥 북카페 소북의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책방 ‘밀당’. 책마다 책방 주인이 정성스럽게 쓴 서평 혹은 추천사가 붙어 있다. 이 정도의 애정과 노고는 ‘책을 파는 것’ 너머의 일이다.
# 잘 팔리는 책은 들이지 않는 책방
한옥 안쪽 깊숙이 자리 잡은 책방 ‘밀당’에선 놀랄 일이 하나 더 있다. 진열대의 책마다 노트 반 장만 한 메모지가 붙어 있다. 부인 최명옥(56) 씨가 책을 읽고 손글씨로 빼곡하게 적은 감상이다. 노랑, 연두, 하늘색 메모지가 책 표지마다 한 장씩 붙어 있는 진열대는 그 자체로 하나의 풍경이다.
메모는 정직하다. 한 소설집에 붙은 메모는 “무슨 얘기인가 했다”로 시작한다. 젊은 작가가 그려낸 낯선 세계에 몰입하기 어려워 첫 몇 페이지에서 여러 번 숨을 고르며 겨우 나아갔다는 고백이다. 그러다 끝내 그게 우리 곁에 사는 사람 이야기였다는 걸 알게 됐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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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리드 누네즈의 소설에 붙은 메모는 과거나 미래의 행복보다 지금에 집중하게 되는 책이라고 권한다. 책 한 권 팔자는 마음으로는 쓸 수 없는 글이다. 메모만 읽다가 책을 집어 드는 손님이 적지 않다.
‘어른의 어휘력’에 붙은 메모가 압권이다. 들여놓기 무섭게 팔려 나가 좀 질려 버렸단다. 다른 책도 팔렸으면 하는 마음에 한동안 들여놓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하도 찾아 결국 다시 들여놨다는 사연이다. 잘 팔리는 책을 일부러 밀어내는 책방이라니. 책과 밀고 당긴다는 ‘밀당’이란 이름이 메모 한 장으로 다 설명된다.
독자들이 산청 여행길에 들고 갈 만한 책을 권해 달라고 하자, 최 씨는 세 권을 꼽아줬다.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 마쓰이에 마사시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J D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는 숲속 여름 별장에서 한 계절을 나는 건축가들의 이야기다. 공교롭게도 이 집도 한때 누군가의 여름 별장이었고, 여름은 이제 막 지나갔다.
부부가 그리는 이곳의 내일도 최 씨가 책에 적어둔 메모와 결이 같다. “사람을 빨리 불러 모으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지금처럼 차분하게, 붐비지 않게, 오래 가고 싶습니다.” 강 씨가 꿈꾸는 건 어릴 적 살던 집 같은 곳이다. 지금은 남이 살아 들어가 볼 수 없는 옛집 대신, 누구든 들어와 제 기억을 꺼내 보고 갈 수 있는 집. 실제로 오래전 이 집에 세 들어 살았다는 이가 찾아와 몇 번이나 고맙다고 인사하고 갔다.
마을 사람들의 걱정과 달리 손님은 하나둘 늘었다. 산청군은 마을에 한옥을 지어 부부에게 빌려줬고, 부부는 거기서 북스테이 ‘단계’를 꾸린다. 사람이 사람을 부르기도 했다. 종가로 돌아올지 망설이던 한 화가 종손이 소북에 들렀다가 강 씨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무조건 오시라, 같이 좋은 마을을 만들어 보자”고 했더니, 그가 정말 마을로 내려와 갤러리를 열었다.
산청을 대표하는 인물 남명 조식이 학문을 닦던 곳에 그를 기리기 위해 세운 덕천서원.
# 느슨하고 심심한 골목
카페를 나서거든 마을 골목을 걸어 볼 일이다. 단계마을엔 한옥이 많다. 그렇다고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즐비한 건 아니다. 말끔한 신식으로 손보지 않아 좀 누추해 보이기도 하는 ‘진짜’ 한옥들이 양옥과 두서없이 섞여 있다. 강 씨는 이곳을 “요즘 보기 드문 진짜 시골”이라고 했다. 이끼 낀 돌담이 골목을 따라 이어지고, 담벼락엔 새마을운동 시절의 흔적이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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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도 예전의 시골이 아닌 요즘, 단계 골목에선 시간이 반 박자쯤 느리게 간다.
골목 안쪽엔 400년 넘은 서원도 하나 숨어 있다. 1614년 동계 권도를 모시려고 세운 완계서원이다.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헐렸다가 강당부터 다시 지었고, 1985년에야 지금 모습을 되찾았다.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서원이 마을 집들 사이에 섞여 제 나이를 내세우지 않고 앉아 있다.
이채로운 건 단계초 교문이다. 기와를 얹은 솟을대문이 교문이다. 현판엔 ‘삭비문(數飛門)’이라 적혔다. 어미 새가 새끼에게 나는 법을 거듭 가르친다는 뜻이다. 아이들은 날마다 그 문을 드나들며 날갯짓을 배운다.
마을 들머리 논가엔 지난해 세운 ‘단계딸기 유래비’가 서 있다. 1985년 마을 사람 셋이 처음 딸기 농사에 뛰어들었다. 몇 해를 실패하고 전국을 돌며 배운 끝에 재배에 성공했고, 일본과 네덜란드를 찾아가 배워 온 기술로 지금의 단계딸기를 일궜다고 새겨져 있다. 40년 만에 젊은 세대가 대를 이어 농사를 짓는다는 대목에선 마을의 자부심이 묻어난다. 강 씨에게 “딸기 농사나 지으라”던 이웃들의 말이 핀잔이 아니라 진심 어린 권유였다는 걸, 이 비석 앞에서 알게 된다.
단계 골목의 매력은 느슨하고 심심하다는 데 있다. 볼거리를 줄 세워 놓지도 않았고, 걷는 이를 재촉하는 것도 없다. 골목이 끝나는 곳에서 들판이 시작되고, 들판은 가을볕에 누렇게 익어 간다. 그 너머로 딸기 하우스들이 줄지어 있다. 뒷짐 지고 걷기 딱 좋은 계절이다.
정취암의 산신각 뒤쪽 바위벽에 걸어 놓은 산신탱화. 탱화 앞에다 호랑이를 탄 산신 석상을 놓았다.
# 법어 아래 놓아둔 모기약
단계에서 멀지 않은 같은 신등면 대성산 벼랑 위에 정취암이 있다. 암자 뒤까지 차로 오를 수 있지만, 벼랑에 제비집처럼 붙은 암자를 올려다보며 걷는 산길도 20분 남짓이면 된다. 입구는 좁고 들어갈수록 넓어진다. 풍수에서 기운이 머무는 자리로 치는 ‘전착후관(前窄後寬)’의 지형이다.
암자는 소박하다. 원통보전과 삼성각, 정취전 몇 채가 벼랑에 기대 옹기종기 앉았다. 바람 소리와 목탁 소리가 지나가는 원통보전 처마 아래 현수막이 걸렸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머무는 곳마다 주인이 되라, 지금 선 그 자리가 곧 진리라는 임제 선사의 말이다. 바로 아래 화이트보드엔 손글씨로 ‘모기 물린 데 바르는 약’이라고 적혀 있다. 아무나 가져다 쓰라고 내놓은 약이다. 절집에선 이것도 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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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 묵은 법어 아래 모기약이 놓인 풍경이 어떤 법당 장식보다 정겹다.
원통보전 안엔 50㎝쯤 되는 목조 관음보살이 앉아 있다. 조선 후기에 조성된 불상인데, 작고 아담한 몸에 온화한 미소를 머금었다. 법당을 나와 고개를 들면 큰 바위 위에 거북 두 마리가 나란히 엎드린 듯한 쌍거북바위가 보인다. 이 바위에 빌면 부부 금실이 좋아지고 자손을 얻는다고 했다.
삼성각 뒤엔 1833년에 그렸다는 산신탱화가 있다. 호랑이를 탄 산신이 어디론가 행차하는 그림인데, 그 앞엔 호랑이 탄 산신을 돌로 깎은 석상까지 앉혀 놓았다. 불교와 토속신앙이 한 마당에서 사이좋게 지낸다.
삼성각 곁엔 납작한 책을 포갠 듯한 ‘책바위’가 있다. 조선 초의 도사 문가학이 젊은 시절 이 암자에서 흰 여우에게 둔갑술 책을 얻었는데, 아홉 장 가운데 여덟 장을 익혔을 때 여우가 마지막 한 장을 이 바위에 숨기고 사라졌다는 전설이 깃든 바위다. 여덟 장짜리 도술은 딱 그만큼 어설펐다. 가뭄에 그가 빌어 내린 비는 겨우 먼지를 적실 정도였다고 ‘조선왕조실록’은 적었다. 하늘과 귀신의 군사를 부르겠다며 역모를 꾸민 그는 1406년 저잣거리에서 수레에 매여 찢겼다. 둔갑을 하고도 상투 끝을 감추지 못해 들켰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꾸민 모습 끝으로 본모습이 삐져나온 것이다.
정취암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자리는 따로 있다. 삼성각에서 5분쯤 더 오르면 암자에서 가장 높은 정자, 만월정이 나온다. 넓적한 너럭바위 곁에 선 정자다. 발아래로 신등의 들판과 마을이 펼쳐지고, 그 너머로 합천 삼가와 의령 한우산, 자굴산의 능선이 겹겹이 물결친다. 산청 아홉 경치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조망이다. 해 뜨는 풍경을 보러 새벽에 오르는 이도 많다. 가을엔 누렇게 익은 들판이 산자락 사이를 가득 메운다. 방금 걸었던 단계의 골목도 그 들판 어딘가에 있다.
전(傳)구형왕릉. 금관가야의 마지막 임금 구형왕의 무덤으로 전해지는 곳이다. 산청의 대표적인 명소다.
# 공들인 티를 내지 않는다는 것
신등에서 산청읍 쪽으로 내려가면 지리산 동쪽 끝 봉우리 웅석봉 아래 수선사(修禪寺)가 있다. 오래된 절이 아니다. 문화재도 없다. 비구니 여경 스님이 30여 년 동안 홀로 일궜다. 그 30년의 손길이 절 구석구석에 배어 있다. 어디 한 곳 손이 가지 않은 데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원래는 다랑논이었다. 논에서 돌을 걷어내자 웅덩이가 생겼고, 그 웅덩이가 연못이 됐다. 거기 연을 심을 요량이었는데, 계곡의 찬물에선 연이 잘 자라지 않는다. 그래서 물이 위쪽에서부터 천천히 데워진 뒤 연못에 들도록 물길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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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데까지 손이 갔다.
절 입구부터 범상치 않다. 돌계단을 몇 개 오르면 사립문이 나온다. 일주문도 천왕문도 없다. 사립문이 곧 절의 문이다. 문을 지나면 둥근 연못이 펼쳐진다. 연못가엔 통나무를 깎아 만든 물레방아가 천천히 돌고, 그 곁엔 직선으로 반듯하게 지은 현대식 건물이 한 채 섰다. 3층이 카페다.
카페 테라스에 오르면 연못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연꽃은 진 지 오래. 연잎과 수련 잎이 수면을 빈틈없이 덮었고, 그 위로 나무다리가 굽이굽이 돈다. 난간은 휘어진 나뭇가지의 생김새를 그대로 살려 엮었고, 다리 위엔 나뭇조각을 겹겹이 얹은 너와 지붕을 얹었다. 반듯한 데가 하나도 없는데, 거슬리는 데도 하나 없다. 아무렇게나 둔 듯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그렇게 보이게 하는 데 많은 손이 갔을 것이다.
찻잔을 앞에 두고 내려다보고 있으면 다리 위를 거니는 사람들이 그림 속 인물처럼 작아진다. 연꽃이 피는 한여름이면 이 연못이 훨씬 더 화사해지겠지만, 꽃이 지고 잎만 남은 가을 연못에도 고요한 맛이 있다.
지리산 아래 중산리 절터에 모셔진 지리산 성모상.
수선사에서는 크고 화려한 건 없다. 소박하되 단정하다. 마당 구석구석, 댓돌 옆, 툇마루 아래까지 흠잡을 데가 없다. 오래 쓸고 닦아 반질반질해진 마루 같은 절이다. 들어가면 누구나 감탄하고 나오는 곳이 수선사의 해우소, 곧 화장실이다. 신발을 벗고 실내화로 갈아 신고 들어가는데, 바닥엔 물기 한 。 없고 안은 잘 꾸민 카페 같다. 그래서 문득 드는 의문 하나. 절을 이렇게까지 가꿔도 되는 걸까. 형상 있는 것은 모두 허망하다는 게 부처의 가르침 아니었던가.
그 물음의 답은 절에 들어설 때 이미 지나온 문에 걸려 있었다. 수선사 입구의 사립문 이름이 여여문(如如門)이다. ‘있는 그대로’라는 뜻이다. ‘금강경’엔 형상에 매이지 않아 있는 그대로 흔들리지 않는다(不取於相 如如不動)는 구절이 있다. 가장 공들여 가꾼 절이 ‘있는 그대로’를 문패로 내걸었다.
공들였으되 그걸 드러내지 않는 것. 그게 이 절이 보여주는 장엄(莊嚴)이다.
■ 지리산 성모상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는 최단거리 등반코스 출발지。이 산청의 중산리다. 이 마을 작은 절터에 높이 74㎝의 지리산 성모상이 있다. 고려 명종 때 머리가 사라졌다가 찾았고, 황산대첩에서 패전한 왜구의 칼을 맞았다. 1973년엔 아예 자취를 감췄다가 14년 뒤 진주의 한 과수원에서 머리가, 천왕봉 아래 계곡에서 몸통이 나왔다. 그때마다 누군가 부쉈고, 그때마다 누군가 되찾아 왔다. 다시는 잃지 않겠다며 천왕사는 성모를 바위에 콘크리트로 붙여 버렸다. 성모는 지금도 그 바위에 붙어 있다.
려낸 낯선 세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