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수교 77주년 기념일인 6일까지 신압록강대교 개통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개통은 머지않아 보인다. 신압록강대교 개통은 2014년 10월 교각 본체 완공 이후로 12년 동안 미뤄져 왔다. 이는 북·중의 ‘불신 속 협력’의 역사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북한은 2003년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하고 2006년 1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1718호가 통과됐다. 중국은 이듬해 초 우다웨이 외교부 부부장을 통해 북한에 신압록강대교 건설을 제의했다. 2009년 북한 2차 핵실험 이후 유엔 안보리 결의안 1874호가 통과됐다. 이듬해 10월 원자바오 총리가 방북해 공사비를 전액 중국이 부담하는 신압록강대교 건설에 합의했다.
중국은 북한의 핵실험이 있을 때마다 국제적 제재에 협력하는 한편 경제적 선물 보따리를 안겼다. 여기에는 북한 체제가 취약한 모습을 보이면 중국이 후견자로 나서 체제 안정을 뒷받침하는 것이 득이 된다는 중국 측의 판단이 깔려 있다. 중국이 2009년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던 동북진흥계획에 따라 북한이 개방된 경제 체제로 나아가도록 유도할 필요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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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2013년 3차 핵실험과 은하 3호 발사 이후 양국 관계는 냉각됐다. 중국의 북핵 접근법도 달라졌다. 북한의 4차 핵실험(2016년 1월)에 유엔 안보리 결의안 제2270호, 5차 핵실험(2016년 9월)에 제2321호, 6차 핵실험(2017년 9월)에 제2375호가 차례로 통과됐다.
북·중은 수교 이래 적지 않은 마찰을 겪었지만, 공통의 안보 위기가 생기면 결속하는 패턴을 보였다.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의 대중 압박이 가열되면서 이 패턴은 그대로 반복됐다. 중국은 유엔 추가 대북 제재에 반대하며 조금씩 북한 경제의 숨통을 풀어줬으며, 중국 지도자와 정부의 발언에서 북한 비핵화는 물론 한반도 비핵화도 언급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북·중 간 신뢰가 완전히 회복된 것도 아니다.
중국이 2007년 신압록강대교 건설을 처음 제의했을 때 북한은 확답하지 않고 러시아에 2008년 나진항 부두 개발권을 먼저 선사했다. 신압록강대교 이전에 북·러를 잇는 두만강대교가 먼저 개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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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착공 16개월 만이다. 이 다리가 중국 상선이 통과할 수 있는 높이로 지어졌는지 북·중·러 모두 공식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중국 관영매체들이 중국의 출해권을 언급하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 것에서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신압록강대교의 개통으로 북·중관계의 한 페이지에 마침표가 찍혔다. 중국의 동북진흥계획은 당초 한국과 일본도 참여하는 프로젝트였으나 최초의 구상과 다르게 실현될 수밖에 없게 됐다. 북한 경제는 남한을 배제하고 어느 정도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북·미 직접 대화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는 군사적 충돌의 북측 기회비용이 커졌음을 의미한다. 국력이 지나치게 비대칭이기에 협력해도 불신을 갖고, 지정학적·역사적 이유로 불신하면서도 협력하는 북·중관계의 구조적 조건이 변하지 않았다.
한반도 화해 분위기 속에서 동북아가 협력한다는 꿈이 이뤄지려면 상당한 시간 동안 인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도 ‘동북 발전’의 관.에서 이를 아쉬워하는 목소리는 적지 않다. 다만 불신은 거울 역할도 한다. 조급해하지 않고 불신의 틈새에서 상대의 욕망을 읽어내며 공통의 이해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지혜를 마련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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